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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전민동에 갈 일이 있어서 골목에 주차를 했습니다. 일을 보고 종종 걸음으로 차로 향하는데, 우측 언덕으로 옛 건축물이 보입니다. 정각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지 궁금해서 올라 가 보니 두 개의 정각 안에 비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지 라고 해설문을 읽어 봤는데 정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정려란

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제도는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역시 조선시대부터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대부분 치국의 도리를 유교적 윤리관에 바탕을 두었고 아울러 사회교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도 펼쳐나갔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정려정책이다. <출처 : 한국문화사>

요렇게 나오네요. 결국 저는 정려를 보지 못했습니다. 짧은 생각에 비석만 찾았으니 말입니다. 위를 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현판이었던거네요. 다행히 사진에는 정각 안으로 정려가 보입니다.


병자호란 때, 1636년 12월 강화신성에서 끝까지 항쟁하다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기 직전 남문에 올라 분신자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남긴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연산서씨는 김익겸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아들의 죽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네요.

두 개의 정각 옆에 비석이 있기에 이것이 중요한 문화재인줄 알았습니다. 시간되면 다시 가서 정려를 봐야겠습니다.


정각 옆 길을 돌아 올라 가니, 고택이 보이고 그 뒤로, 묘가 보입니다. 김익겸과 그의 부친인 김반의 묘소라고 하네요.


대문 앞에서 지는 해를 바라다 보니, 교회 건물과 우리 건축물이 묘하고 아름다운 저녁 모습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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