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름만 되면 달려 갔다.
방학때 별다른 놀이거리가 없던 우리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냇가로 달려 갔다.
수경을 쓰고 잠수해 보는 물 속 풍경은 참 멋졌다.
그 와중에 동생은 빠져 죽을 뻔 해서 넋을 놓고 있던 때도 있었고.
우리 형제들은 서로를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같다.
사내들이라 그런가?
여하튼, 여름철 냇가는 식량의 보고였다.
냄비엔 파, 마늘,고추가루, 소금, 고추장, 제일 중요한 라면을 들고
특히 장마철 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 많던 붕어며, 불가사리, 그리고 돌 밑에 숨어 있던
메기 등은 좋은 먹거리였다.물론 나는 즐기지는 않았다. 깔끔떠느라고^^
여름이면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놀이터 - 냇가
어느 덧
천렵(?)을 했던 뚝방길엔 시멘트가 깔려 차가 다니고
늦잠꾸러기 학교 가려면 꼭 건너야 하는 보는 과학이 적용된 보로 바뀌어
건너려면 젖어야만 한다.
물장구치던 곳은 육지가 되어 우레탄 조깅길로 바뀌었고
시간은 흘러 내 고향은 증평산업단지가 들어섰다.
마을을 감싸주고 지켜주던 이성산은 뒷동산이 되어 있었고
국민학교시절 죽어라고 고구마를 캤던 그 곳엔 요상한 집이 들어서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틈만 나면 놀러 갔던 양계장을 바라 보면 공장이 보인다.
닭 빼는 날이면 손가락 사이에 닭발을 끼어 양 손에 8마리를 철장 속으로 던졌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떨어지는 놈 없이 속으로 쏙 쏙 잘 들어갔다.
그런 날이면 형이 돼지고기, 깻잎, 고추장을 같이 풀어 끓인 찌게와 밥을 주었다.
그리고 용돈도^^
배가 뽈록 나올 때까지 먹었다.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릴 적 노루며, 토기, 뗄감을 구했던 산도
운동한다고 뛰어다니던 시골 길도 없다.
지금의 동네 뒤엔 도로가 뚫리고 네온사인이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냇가도,
넘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붕어들은 사라지고
붉게 물든 저녁 물 위를 낮게 날아가는 외가리도 없어진
그 자리를 청둥오리가 메꾼 그 곳
추억이 깃든 그 곳
멀리 채 열가구 정도가 둥지 튼 고급 아파트가 보인다.
그래도
엄마가 있는 내 고향